이 말을 영어로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성질 급한 뉴욕 현지 영어 배우기.
지금 스타벅스에 앉아있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 한 분이 화장실 다녀오는 동안 자기 노트북이랑 가방을 좀 봐달라고 한다.
순간 작년에 트위터에서 본 글이 반짝 떠오르면서 생각났다.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자주 가지 못하고 카페에 앉아있을 수 없게 되니까 가장 그리운 것 중의 하나가
"카페에서 옆자리 앉은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소지품 맡아서 봐주는 거"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밝힌 사용자가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너무나 공감하는 말이었다. 낯선 사람들과의 랜덤한 소통이 그립다는 것을 재치있게 표현한 말이었다.
공연장에서도 마찬가지고 카페나 음식점에서 그렇고 뉴욕에는 혼자서 여행하거나 혼자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현지인이든 여행자든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가벼운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고 누구나 부담없이 들어줄만한 부탁이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쓸 때 거의 매순간 긴장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거의 평생 영어를 사용하면서 살았는데도 말이다.
영어를 전공했고 직업 특성상 꾸준히 영어를 사용해서 큰 부담은 없었지만, 역시 뉴욕은 좀 다르다.
일단 너무나 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모인 상황이 넘쳐나는데다가 그로 인해 상상을 초월할만큼 서로 다른 억양과 영어문법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 글을 읽는 분이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비유한다면, 뉴욕 여기저기서 사용되는 다양한 영어를 듣다가 영어 뉴스방송을 들으면 정말 한국어를 듣는 것처럼 잘 들린다. 기준이 없을만큼 다양한 영어를 매일 듣다보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깔끔한 발음들이나 문법을 들으면 그만큼 비교적 익숙하게 잘 이해된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왜 영어를 저 따위로 하지? 저렇게 해서 알아먹을 수 있다고? 등등 짜증나는 상황도 제법 많았다.
나는 외국인이지만 이렇게 (나름대로) 정석으로, 올바르게 사용하는데 왜 나처럼 하지 않고 저런 이상한(?) 영어를 하는거야. 이런 생각까지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현지인들조차 상황에 따라 영어를 너무 대충 편하게 쓴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사용함에 대한 대한 부담을 많이 떨칠 수 있었다.
일상에서 듣거나 이메일 들을 통해 접하게 되는 다양한 영어는 정말 예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런 것들을 살짝 정리해서 포스팅 해보고도 싶다.)
오늘 갑자기 생각난 것은 뉴욕에 거의 처음 왔을 때 카페에서 들었던 대화내용 때문이었다.
뉴욕대학교 근처의 Think coffee라는 곳이었는데,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는데 주문할 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안 물어본 것이다.
다시 카운터까지 가지는 좀 귀찮아서 옆에서 이미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한테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알려줬다.
당연히 고맙다고 했더니 우리가 아는 You're welcome 은 커녕 이 학생의 입에서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Um-hum~"
정말로 이게 다였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거나 영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분들은 당연히 You're welcome이 생각날거고 실생활에서 영어를 가끔 쓰는 사람들은 No problem, Anytime, My pleasure 이 정도일 것이다.
(진짜 좀 오래 전에 영어를 배운 분이면 Don't mention it.... 을 기억하실 수도 있는데 ...이건 좀 멀리 나간 것 같다. 하하.)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저 당시 저렇게 대답한 학생의 대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영어를 조금 많이 사용하는 분들은 Thank you에 대한 답으로 Sure! 정도는 쓴 적이 있는 지도 모른다. 심지어 요즘은 그냥 구어적으로 Of course! 를 쓰기도 한다. (그만한 부탁 정도는 당연히 들어주지! 정도의 뉘앙스).
하지만 너무나 간단하게 (하지만 친절하게) 음흠~ 이라니. 물론 대학가의 카페이기도 했고 대학생 정도니까 이렇게 깔끔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은 상황이기도 했지만,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라서 나는 한동안 You're welcome을 머리에서 잠시 지워버리고 그 학생처럼 음흠~ 정도만 한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가 굉장히 길었다!!!)
영어도 그렇지만 모든 언어는, 특히 현지에서 쓰이는 언어는 그리 나쁜 게 아니게 아니라면 한 번씩 꼭 따라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다. 몰라서 안 쓰는 거랑 알면서도 여러 옵션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차이다. 이런 게 언어를 배우는 재미이기도 하고, 언어 자체가 문화이기도 하니까 외국 생활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을 이렇게 익혀 나가는 과정도 꽤 재밌다.
나는 좀 전에 화장실 다녀오면서 자기 짐을 봐줘서 고맙다고 하는 아저씨에게 재빨리 대답하면서 이 글을 적기 시작했는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Sure, No problem! 이었다. 한동안 Um-hum~을 즐겨 사용했었는데, 계속 뉴욕 현지에 살다보니 어느 순간 적당히 친근하고 너무 가볍지 않은 뉘앙스의 영어를 자연스럽게 찾아간 것이다. 사실 Um-hum~은 아무리 뉴욕 현지인 기준에서 본다고 해도 살짝 가볍고 어쩌면 예의 없어보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굉장히 어린 사람이 쓸만한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내 영어는 내 성격이나 품성을 반영할 수 밖에 없으니까! 하하.)
뉴욕에서 접하는 영어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경험들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다음에 또 한 번 정리를 해보고 싶다. 참고로 여러 인종이나 국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내 기준에서 단연코 가장 알아듣기 어려운 억양은 바로....
러시아식 억양을 가진 사람들의 영어다. 정말 무슨 소린지 하나도 들리지 않아서 너무 암울하기까지 했다.
(이 일화는 다음에!)
동네 카페에서 아주 잠깐 예전의 일을 떠올리게 해준 아저씨는 짐을 챙겨서 눈인사를 하고 떠났다.
나도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다. 오늘 뉴욕 날씨 정말 끝내주게 무덥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시길!